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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J. MAGAZINE 2015 03. "보이차 컬리너리 투어" _ 안은금주의 컬리너리 월드와이드
    Media/신문,잡지 2016. 4. 20. 18:16

    '안은금주의 컬리너리 월드와이드'

     

    전 세계의 食 트렌드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우리 식문화가 걸어갈 길을 다시 생각해보는 2015년 '컬리너리 월드와이드'

    문화의 양식으로부터 일상의 테이블까지, 한국의 테루아를 탐험하는 미각 여행을 함께해온 푸드 큐레이터 안은금주가 마음에 품은 큰 뜻을 찾아서 '보이자' 원류지인 중국 푸얼시로 컬리너리 투어를 다녀왔다.

     

     

     

     

     

     

     

     

    3월 하순, 햇차가 나오는 시기다. 본격적인 봄이 돌아왔다는 풋풋한 신호다. 햇차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차 재배 농가의 한숨은 깊다. 수제차 한 통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꼬박 매달려 일일이 손으로 찻잎을 수확해야 한다. 첫 물에 나오는 찻잎은 하루종일 수확해도 1kg정도다. 그것을 덖고 유념해 말리기를 반복하면 양은 1/10로 줄어든다. 100g 한 통 정도가 된다. 들인 정성과 시간에 비해 값은 헐하다. 10만원을 채 못 받는다. 하루 인건비가 1인당 7만원을 훌쩍 넘는 최근 물가를 감안하면 일찌감치 이문 남기는 장사를 포기해야 하는 산업인 것이다.

     

    반면, 전 세계 모든 차의 고향인 중국 남부 원난성 푸얼시에서 재배 및 생산되는 '보이차'는 어떤가. 수천년 동안 신이 내린 잎사귀를 따고 차를 만들어온 그들을 보며 한국의 보성 녹차, 장흥 떡차, 하동 야생차, 사천 녹차, 제주 차에 대해 생각해본다. 천 년 가까이 대를 이어 차를 재배해온 한국의 차농, 오늘날의 젊은 아들들은 무엇보다 가업을 이어가는 일이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버텨갈 뿐이다. 우리 차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제주 차 재배 농부와 차의 본고장을 찾아 떠났다.

     

    보이차의 고향, 남나산 고차수

     

    1월에 출발한 터라 입고 나섰던 두꺼운 외투는 푸얼시(市)에 도착한 순간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었다. '보이시'라고도 불리는 푸얼시의 날씨는 무척 온화했다. 일년 내내 대부분 지역에서 서리가 내리지 않는 아열대 기후의 영향을 받는 이곳은, 전체의 98.3%를 차지하는 면적이 산이요, 평균 해발고도 376m~3,306m 사이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차 생산지이다. 인종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기서 대를 이어 차를 재배해온 아이니족의 촌장 아들 알리 씨를 만났다.

     

    그의 안내로 보이차의 재배지인 남나산(南糥山) 고차수를 만나러 갔다. 남나산은 운남성 시상반나 타이족자치주에 위치한 산으로, 제갈공명이 차나무를 심어 병사들의 눈병을 고쳤다는 유명한 고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차를 타고 입구까지 올라갔다. 길이 잘 나있었다. 보이차가 명성을 얻으니 관광지로 잘 가꿔놓은 듯했다. 해발 1,500미터가 넘는 산 중턱에서 아이니족 마을 풍경이 펼쳐졌다. 흡사 영화 <와호장룡>에서 봄직한 장면이다. 해무에 반쯤 가려진 마을과 빽빽한 숲이 어우러진 산세는 현세의 모습이 아닌, 신선이 살던 곳인 양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좌우로 펼쳐진 차 재배지 모습은 마치 하동의 야생차나무 재배지와 흡사하다. 경사가 매우 가파른 곳에 어른 손바닥만 한 길이의 대엽종 차나무가 즐비했다. 차밭의 흙을 일구는 젊은 청년 무리를 보니, 21세기에도 가업을 잇는 아이니족의 풍부한 인적 자원이 고맙기까지 했다.

     

    테루아를 품은 차의 맛

     

    울창한 산림에 들어서자 숲을 가로지른 바람이 코끝에 스친다. 아! 이것은 보이차 맛에서 느꼈던 향이다! 바로 이 지역 테루아의 향이다. 천 년이 넘도록 차나무들이 뿌리내리고 자란 토양, 물, 바람, 일조량, 고도 등이 모두 읽혀지는 테루아가 코끝에서 진동했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한 그루의 차나무가 된 듯 그 향기에 동화되어갔다. 이것이 바로 목숨을 걸고 티베트 사람들이 차마고도를 가로지르게 만들던, 보이차 생산지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진 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길이 2km에 이르는 광대한 차 재배지를 따라 300~500년 수령의 고차수 차나무들이 즐비하다. 밑동 굵기와 울창한 품새부터 한국에서 보던 소엽종 차나무와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에서는 소엽종 수확 시 채엽기 높이에 따라 또는 사람이 재배하고 수확하기 쉬운 높이 정도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는 성인 남자 2~3명이 올라도 끄떡없을 정도로 야무졌다. 경사로의 차밭에서 높은 나무에 올라가 찻잎을 수확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800년이 넘은 제1 고차수에 이르러 막 찻잎을 수확해 내려온 아이니족 아주머니 한 명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니 차를 마시고 가라한다. 이들은 더러 관광객이 오면 차를 내주고 팔기도 해왔다.

    아이니족 족장 알리가 자신의 집이자 차를 만드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이니족 여자들이 주로 찻잎을 수확하는 일을 한다면 차를 만드는 일은 남자들의 몫. 채취한 찻잎은 우리의 가마솥과 같은 솥에서 덖는 살청을 거쳐 차 맛이 잘 나도록 손으로 비비는 작업인 유념 후 다시 말린다. 말린 찻잎을 다시 수증기에 한 김 쐬어 찐 후 면보에 담고 돌돌 말아 맷돌을 사용해 압착시킨다. 이때 맷돌 위로 남자들이 올라가 단단히 누르면 병차 모양을 만드는데 맷돌 밟기만 30분을 한다고. 단단히 뭉쳐진 둥근 차 덩어리가 바로 우리가 부르는 푸얼차 또는 보이차다. 이 방법을 긴압차라고도 하는데 차를 먼 지방으로 운송하러 차마고도로 가는 마방들이 짐을 꾸리고 싸기 쉽게 하기 위해서 압축한 데서 유래한다. 이 차들은 대부분 생차와 청차다.

     

    한국인들이 흔히 최고의 보이차라 여기는 '숙차'는 바로 이 생차를 인위적인 습수 발효 속성법으로 곰팡이를 통해 발효시킨 것이다. 1907년대 들어 만들기 시작한 숙차는 찻잎을 덖은 후 하루 동안 햇볕에 말린 것을 쌓아놓고 40일 동안 물을 3~4회 정도 부으면 찻잎이 발효된다. 이 과정에서 좋은 미생물이 자연스럽게 찻잎 위에 붙어 발효가 진행된다. 온도와 습도 조절이 중요한 기술이다. 3~4월에 차를 채취해 긴압차로 만든 보이차가 푸얼시에 모이는 시기는 5~6월경이다. 푸얼에서 출발하여 리장(江)을 지나 샹그릴라까지 가는 데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차마고도를 통해 7~8월에 우기인 원난성으로 가는 동안 여러 번 비를 맞고 마르는 일이 반복되며 차가 발효된다. 샹그릴라에 도착하면 생차가 숙차로 변해 있었다. 현재의 숙차 보이차는 이런 과정을 응용하여 생산하고 있다.

     

    "맛은 삶의 문맥 위에 있다"

     

    쿤밍에서 시상반나와 남나산까지 집집마다 내준 차를 마시며 보이차 맛의 향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숙차는 내가 알고 있는 보이차의 맛 그대로였다. 다만 그 맛이 3년산, 5년산, 8년산에 따라 색, 향기, 맛 등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다. 오히려 이번 보이차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은 생차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생차는 보이차의 향기와는 전혀 달랐다. 맑고 청아했으며 꽃향기를 닮은 것도 있었다. 5년산, 9년산, 15년산으로 갈수록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었다. 함께 간 일행들은 모두 같은 생각의 결론을 얻었다. 차가 비싸다 싸다, 맛있다 맛없다를 떠나서 "여행을 통해 기억되는 맛, 자연을 느끼며 직접 생산자들과 교감을 통해 얻는 맛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맛보다 가장 먹고 싶게 만드는 최고의 맛"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의 차 맛도 보이차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어떤 곳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리고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소개한다면 좋은 차를 찾아 때로 '험난한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가는 전세계 차인들에게 한국 차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한국 하동의 차, 제주의 차, 보성의 차밭을 다니며 익숙했던 지역의 향이 어쩌면 제각각 미묘한 차이를 내고 있었을 텐데, 발아래 떨어진 보석을 보지 못하고 이 먼 곳까지 와서야 깨닫다니.

     

     

    # 보이차 형태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두꺼운 빈대떡 모양의 보이차는 '병차'라고 부르는데 포장을 할 때 7개를 하나로 묶기 때문에 칠자병차라 칭한다.

     

    # 보이차의 6대 생산지 중 하나로 면적이 66.6ha에 이르며 가장 방대한 고차수가 잘 보존되고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 작은 장터가 눈에 띈다. 막 도축한 돼지고기부터 텃밭 채소 그리고 다양한 차가 눈에 띈다. 주로 대엽종 차나무로 만든 차와 대통차가 눈길을 끈다.

     

    # 보이차는 보관이 관건이다. 공기가 잘 통하는 상온에서 옹기 항아리에 넣어두면 천천히 발효가 진행된다. 냉장 냉동고는 금물이다. 간혹 차맛이 지나치게 싱겁거나 쓰거나 텁텁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발효가 잘못되거나 곰팡이가 난것이니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 차마고도의 역사는 중국 원난, 쓰촨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문명교역로에서 비롯한다. 중국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왕국이 차와 말을 교역하던 역사에서 시작된다.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불모의 초원에서 차는 유목민이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피요 생명"이며 하루도 차를 안 마시면 살 수 없다고 한다. 당나라 이후 중원의 제국들은 북방 유목민족과 싸우기 위해 티베트의 강인한 말이 반드시 필요했고 토번왕국은 생존을 위해 차를 필요로 했다. 차와 말의 교역은 급속히 번성했고 수천년을 이어 오면서 문명과 문명을 잇는 길이 만들어졌다.

     

    - 청대 이전부터 6대 차산에서 이미 차를 심고 채집하고 파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대표적인 민족 중 하나인 하니족의 생활 속에는 이미 깊에 뿌리내린 차 생활이 있다. 유구한 차 문화를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 찻잎을 덖어 하루 동안 햇볕에 말린 후 증기를 쏘인다. 이것을 틀에 넣어 만든 것이 긴압차다. 오랫동안 자력적으로 건창 발효되면 '청차'가 된다. 보이차를 보관하며 마시려면 숙차가 아닌 청차(색차)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출처: J.J. MAGAZINE 2015년 3월호

     

    TEXT & PHOTO – AN EUNGUEMJU (FOOD CURATOR & BIG FARM COMPANY CEO. KOREA CULINARY TOURISM ASSOCIATION VICE-CHAIRMAN)

     

     

     

    Big Farm 식생활 소통 콘텐츠 기획사

    www.big-farm.com /02-446-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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