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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우잡이 배와 청년... 당연했던 것에 감사하기
    BIG FARM/안은금주가 만난 사람 2011. 3. 19. 22:39


     

     





    2007년 6월 재원도 새우잡이 배를 촬영하러 전남 신안군 지도로 밤새도록 달려갔다.

    지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데 자욱하게 낀 안개가 걷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배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고 한치 앞도 안보이니 세상이 멈춘듯 했다.  

    짙게 낀 안개를 바라보면 말로만 듣던 새우잡이 배를 탄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새우를 잡는 닻배는 폭풍 경보가 떨어지지 않는 한 육지에 정박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달이고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닻을 내려 새우를 잡는다고 했다.

    그러니 사람구경 못하고 사는 선원들이 놀랄 수 있으니 점잖게 인터뷰하라고 당부했다.









    닻배

    재원도의 새우잡이는 '닻 그물'을 이용해 새우를 잡는다. 그래서 새우잡이 배를 닻배라고 한다.

    쇠로 만든 닻채의 길이만도 10미터 달하는데... 그 닻을 약 8-10미터 간격으로 양쪽에 고정시킨 다음 폭 4미터에 양쪽의 닻 길이만큼

    그물을 바다에 드리우고 새우를 잡는다. 썰물과 밀물이 하루에 두 번씩 왔다 갔다 물길을 바꿀 때 새우들이 그물에 걸리게 되고

    이때 배가 닻과 닻 사이를 오가며 그물에 붙은 새우를 터는 것이다.

    잡은 새우는 바로 염장시켜 새우젓으로 만들어 지고 그것을 수송선이 육지로 나르고 있었다. 우리가 탄 승리호가 수송선이었던 것...

    새우젓도 나르지만 육지에 몇 달 동안 나갈 일 없는 선원들을 위해 식량이며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배를 타고 3시간째, 희미하게 닻배가 보였다. 그러다 웃통을 벗고 있던 선원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닻배의 선원들이 분주해지고. 나 역시 약간의 긴장감으로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4명의 선원들은 언제 이발했는지 모를 정도로 덥수룩하게 단발 길이로 자란 머리카락에 구레나룻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삼십대부터 환갑이 넘은 선원들의 나이도 분간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톰행크스 주연의 무인도 표류기 영화인 '캐스트어웨이'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그토록 농산어촌을 많이 다니고 별별 기인들을 다 만났지만

    바다위에서 몇 달을 지냈을 분들과의 낯선 만남에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먼저 인사를 건네던 선장이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구레나룻 수염으로 뒤덮였지만 눈빛을 보니 내 또래 같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왔어요? 나도 서울에서 왔는데.. 반가워요!"

    그가 건네는 서울 말씨에 그리고 반갑다는 인사에 낯설음과 반가움... 그리고 머쓱함이 동시에 범벅이 되며

    그들을 경계했던 내 모습이 되레 미안해졌다.



    "오늘은 안개가 많아서 닻을 못 내려요. 멀리서 왔는데 새우잡이는 못 볼거 같은데... "



    새우잡이를 못 보면 어떠한가... 이미 난 내 또래의 청년이 그 배를 타고 있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 이 배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요."

    새우잡이 배는 1년이고 2년이고, 육지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한 분들이 많이 타신다고 했다.

    말하자면 인생 막장에 몰려 궁여지책으로 배에 오른다는 거다.



    " 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지병으로 쓰러지셨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돈을 빌렸고 그 돈이 사채가 되고 갚을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여기에 있으면 친구들 만날 필요도 없고 소소하게 나갈 돈도 없으니 배를 타는 동안 일한 돈은

    고스란히 아버지 병원비와 빚 갚는데 쓸 수 있거든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히 쏟아내는 말에 어떤 호응도...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돕고 싶은 마음에 뭐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책을 보내달라고 했다.



    "책이 읽고 싶어요... 글자가 그렇게 그리울 줄 몰랐어요.

    선주가 주는 책은 10권의 무협소설 책이지만 제가 읽고 싶은 책이 뭔지 잘 모르시니 부탁할 수도 없거든요.

    망망대해에 6개월을 떠 있다 보니 사람보다 글자가 그리워요."



    청년의 사연도 기막혔지만 글을 읽고 싶다던 그의 말에 '쿵'하고 정신적 충격? 에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돈이 필요하거나 그런 말이 아닌 문명인으로 가장 기본적인 글을 읽고 싶다던 그의 말...

    눈길 가는 곳 마다 글자 투성이인 도심에서의 삶. 너무나 당연하게 보고, 읽고, 접하고 있던 내게 그 대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 후, 당연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잊고 살 때면 문득 이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음에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음에 그리고 이순간 이 글을 읽을 당신이 있을 수 있음에...

    늘 누리고 사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랄까? 그에게 배운 마음가짐이다.




    그 날, 새우잡이 배의 그 청년은 지금 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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