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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엿 먹어라' 복을 나누는 강골 마을 전통 엿 - 안은금주의 로하스 미각 여행
    BIG FARM/Food Story 2011. 2. 13. 14:23








    식생활 소통 연구가 안은금주의 우리 맛 이야기 -  강골 마을의  엿

    '엿'으로 합격을 기원하던 모습도... 점차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언제부턴가 특별한 날, 달콤한 사랑을 전달하는 사랑의 전령사 역할은 사탕과 초콜릿이 대신하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학생에게도 찹쌀떡이나 엿 선물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으로 대신하는 추세다.
    우리의 전통이, 또 하나 사라져 가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해 하고 있을 즈음. '엿'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또 다른 '엿'의 의미를 알게 되기도 했다.









    전남 보성에 자리한 득량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정겨운 돌담길에, 가지런하게 올린 기와 위로
    아궁이에 불 때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정겨운 한옥 마을이다. 이곳 강골마을의 겨울은 참으로 분주했다.
    그 분주한 틈에도 멀리서 귀한 손님이 왔다고 차와 함께 엿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다과상을 내어 오셨다.
    미색의 엿은 입에 대자 금새 톡하고 쉽게 부서졌다. 방정맞지 않고 묵직한 단맛이 오랫동안 입안에 남았다.
    강골 마을은 겨울철이면 멀리서 오는 손님에게 가장 귀한 음식으로 엿을 내어 놓았다 한다.
    엿을 선물로 주는 것은 '복을 선물한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옆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으레 엿을 담은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시집가는 딸 이바지 음식에도 정성들여 만든 엿을 사돈댁에 보냈다고 한다. 내 딸이 좀
    부족하더라도 입 다물어 주시고, 복된 며느리가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였단다. 손님을 맞을 때나 아랫사람이
    인사를 하러 올 때도 강골마을 어머니들은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의 의미로 엿을 내어놓았다 한다.

     

    그렇게 복을 많이 나누었기 때문일까? 마을 소개를 하는 위원장님의 마을 자랑 보따리가 술술 풀어졌다.
    뼈대 있는 가문의 양반가 집성촌으로, 고시 합격한 사람도 셋이나 나오고, 대법원장도 이곳 출신이라며 자랑하시는데,
    자부심이 대단했다. 예부터 복을 나누는 풍습으로 복을 많이 나눴기 때문에 나라에 복된 인재가 많이 배출 된 거라고 했다.

    그러니 강골 마을로 시집온 새색시는 엿 만드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통과 의례였다고 했다.
    현재는 20가구 39분이 살며 그 중에 10분의 할머니들만이 엿 맛을 지키고 계신다고 했다.



    "열 아홉에 양반 동네 시집와서 제일 먼저 배운게 엿이제~ 징하게 만들었소.
    만들기 싫어도 어쩔수 없어 시간이 정해진거라 그날 만든 것은 뭔일이 생겨도 만들어야헝께.
    거시기 언제까지 흔다는 것은 해봐야 알제. 죽을때까지 하겄지.
    전통을 살리기 위해 손으로만 할라고 헝께 힘들지만 해야제 맹물 갖고 쌀 쪄서 고두밥 짠 물이
    하얗게 구멍 나오는 엿으로 되는거 보믄 날마다 해도 신기하제... 잉~"








    날이 쌀쌀해지는 12월부터 2월까지 엿을 만드는데 날이 조금만 더워도 엿이 눅진해지고
    비오는 날은 비려지고 맛이 없기 때문에 겨울에만 엿을 만든다고 했다.

    "엿 만드는거 볼라믄 싸게 싸게 준비해야 한당께~ "

    할머니 한 분이 싸래기 쌀과 쌀눈 달린 맵쌀을 사라락 보일 정도로 섞어 대야 가득 쌀을 씻으셨다.
    의아한 눈빛으로 싸래기 쌀을 보던 내게 위원장님이 한마디 거드셨다.

    "우리 마을의 엿은 도정하고 남은 싸래기 쌀을 가져다 엿을 만들어서 달지 않아요."

    어렸을 때는 다른 동네 엿은 달고 우리 동네 엿만 안 달아서 씩씩 거리며 우리 동네는 꼬꿉쟁이(구두쇠) 동네라서 그런가 보다 했단다.
    귀한 농사지어 얻은 쌀 찌꺼기라도 헛되지 않게 사용했던 청렴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다.
    전부 쌀눈 달린 멥쌀만 사용하면 엿이 아린 맛이 난다고 했다.

    가마솥에 불도 때고 시루에 불린 쌀도 앉힌다. 고두밥이 익으면 나무주걱으로 뒤적여 한김 빼주고 엿기름과 섞는다.
    그리고는 따뜻한 물을 넣고 잘 섞어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덮어주며 60도 상태로 12시간을 삭혀둔다.
    이때는 너무 많이 삭히면 쉬어 버리고 덜 삭히면 단 맛이 안나기 때문에 새벽 잠 설쳐가면 꼭 지켜야 한단다.

    새벽 5시에 가장 먼저 엿질금에 잘 삭혀진 고두밥 건더기를 짜는 일.
    '조르륵' 엿물 내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짜고 남은 엿밥을 건내주시며 먹어보라 하셨다.

    “옛날에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찌꺼기도 귀한 양식이었제`
    엿 만드는 날은 온 마을에 단내가 퍼져서 아이들이 몰리블고
    엿밥이라도 얻어 먹을라고 줄을 섰었제~ 지금은 소밥이지만서도... ”

    단맛을 짜낸거였지만 달콤하고 고소한 맛에 손이 자꾸만 갔다.






    " 엿 만들때는 이틀을 꼬박 정신차려고 있어야 한당께...
      한시라도 마음 놓고 있다가는 쉬어져 불고 하니께~ "

     






    엿 물을 가마솥에 넣고 불 조절을 하며 저어야하는 지난한 작업이 시작됐다.
    가마솥에서 발길이 떨어 질줄 모른다. 할머니들의 불 조절은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며 나무 땔감을 넣고 빼고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몸이 기억하는대로 하신다고 하셨다. 
    평생을 장인의 숨결로 아궁이의 불을 지피고 계셨다.

     






    엿물에 한번씩 안딘 사람이 어딨당가~
    오른쪽으로 애 매고 왼손으로 젓고.. 젓다 보면 졸기도 하고.. 그러다 눌러 버리면 시어머니한테 혼도 나고 그랬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엿물이 뭉근하게 끓으면서 주걱에 실처럼 끈끈하게 달라 붙으며 조청으로 변하고 시간이 더 흐르자 찐덕한 갱엿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됐나 안됐나를 나무 주걱으로 몇 번 떠 보시더니 주걱에 묻어 늘어진 갱엿에 입 바람을 ‘후’하고 부신다. 얇게 떠진 갱엿이 금새 파르르 날아 갈 때가 완성된 상태라고 하셨다. 







     

    문열지 마쇼~!

    뭣도 모르고 들락날락하는 내게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엿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은 지금부터였다.
    엿가락을 만들기 위해 아랫목 뜨끈한 구들방에서 문을 닫은 채 두 분이 갱엿을 맞잡고 늘어 뜨리고 붙이기를 수없이 반복하셨다.
    잡고 늘이기를 200번을 해야지 공기가 들어가면서 검붉은 갈색에서 하얗게 엿이 만들어 진다하고 했다.
    1kg식 갱엿을 떠서 늘리는데. 처음 잡는 엿 뭉치가 뜨거워 깜짝 놀랐다.
    장갑을 낀 손이지만 뜨거운 온도에 손이 퉁퉁 붓고 발갛게 달아 오른다고 했다. 맛 잡는 두명의 호흡도 중요하다.
    굳기 전에 서둘러서 엿을 늘려줘야 나뭇가지 결이 살아 있는 듯한 엿가락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서툰 이방인의 손길에 잡힌 엿은 몇 번 늘리지도 못한채 비품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다 그렇게 배우제... 그래도 배우러 오는 젊은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고맙제~
    우리 죽고 나면 이 엿 누가 만드나 싶은디 젊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엿도 만들고 하면 좋겠네~"

     







    하얗게 잘 늘린 엿을 대청마루에 쫙 깔아 두니 금새 굳었다. 방금 만든 엿을 냉큼 집어 맛을 보았다.
    아.... 눈물 날 만큼 행복한 단 맛이다.
    전날 맛 보았던 그 맛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져서 마음이 울컥했다.







    이틀 동안 옛 여인의 삶에 동조되어서 그랬던가? 어머니들의 진한 모정을 그대로 느껴서 일까.
    이틀 동안 함께 나누었던 엿 이야기에 그 맛 또한 귀하디 귀한 맛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강골마을에서 전해 들은 엿의 의미가 떠올랐다.
    쏟아내는 정성이 이만큼이니 먹여주고 싶고 나눠주고 싶고 귀함을 함께 느끼고 싶었던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엿 먹어라' 그저 속된 표현으로만 알았다면 이참에 우리 문화를 바로 알았으면 좋겠다. 그 안에 '복'이 담겨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통을 지켜간다는 것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여든 할머니들의 수고로움과도 같은 것.
    옛 어머니의 손맛과 그 정성의 맛은 화려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아 가까이 있는데도 그 귀함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때 나도 식품 첨가물과 색소가 범벅된 사탕을 잘 담아 사랑의 마음을 표현했던 때가 있었다.
    형형색색 화려한 색에 눈이 홀려 독을 선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만 화려함을 쫓지 말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진정한 달콤한 맛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강골 마을 카페 http://cafe.daum.net/JNdeukryang

    한정 주문생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엿을 주문할 수 있는 시기는 12월~2월까지)

     



























    Photographer 정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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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big-f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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