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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마음이 남아 있었다. _ 안동 산불 그 후

Eungeumju 2025. 4. 2. 16:46

수애당 안주인과 정재종택 종부, 그날을 이야기하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은 영양, 청송, 영덕, 산청까지 영남 산간을 집어삼켰다. 그중에서도 안동은 내게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곳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안동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감을 여행으로, 공간과 경험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던 곳이기 때문.  그래서 이번 산불 소식을 그저 뉴스로만 보고 있기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안부를 묻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해가 컸던 곳을 방문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분들을 만났다. 

두루미산 위로 치솟는 불기둥

 

그날, 불길이 능선을 넘었다.

3월 25일, 오후 4시
불길은 산을 넘어 빠르게 안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뉴스의 산불 소식과 안동분들이 보내 오는 현장 소식은 달랐다.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지옥불이었는데 언론은 그때의 심각성을 다 담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중 피해가 컸던 안동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임동면은 영양군과 청송군을 산을 경계로 맞닿아 있다. 이 곳엔 전주류씨, 의성김씨 집성촌으로 문화 유산의 고택들이 있었다. 몇 채는 화마에 사라졌고, 몇 채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아슬아슬하게 불길을 피했던 수애당 안주인 문정현님(58)과 정재종택의 김영한 종부님(73)을 만나 위로하며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네 나온나" 
“내 평생… 이런 불은 처음 봤어요. 문중 유산도 중요하지만, 산사람도 살아야지요.”

정재종택 종부님은 3년 전 뒷산 화재로 트라우마가 생겨 이번 불길이 얼마나 빠르게 내려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3월 25일, 오후 5시
수애당을 감싸고 있는 아기산과 두루미산 너머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다. 산에서 내려온 열기가 집 안까지 그대로 밀려드는 순간 그 공포는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정도라고 수애당 안주인은 말했다.

신분증, 약, 귀중품, 고양이만 챙겨 들고 차에 올랐다. 청송, 길안, 안동 시내로 이어지는 세 갈래 길.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는데 그때 안동 시내에 있던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북쪽으로 가세요. 남쪽은 전부 불이 번지고 있어요.”


그리고 곧 안동시민 전체 대피령 문자가 떨어졌다. 안동시민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어디로? 어디가 안전한 곳인데? 안동은 서울보다 두 배 넓은 면적, 산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안전한 곳은 안동 시내인데 그 시내도 위험하다니...  재난 문자를 보니 공포심만 더 커졌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안동 시내로 향하는 차량이 한꺼번에 몰렸고, 도로는 정체되고, 불은 따라붙었다. 매케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앞차의 빨간 브레이크등과 산 너머로 솟구치는 불기둥만 보였다고 했다. 전기가 끊기고 중계기가 타버리자 통신도 멈췄다. 부모가 있는 산촌 고향집과 연락이 닿지 않는 자식들은 걱정에 애만 태웠을 터.

안동 중 일직, 길안, 남선, 임하, 임동 등 남서쪽 지역의 피해가 심각했다. 일직면의 경우 357채 전소로 한마을이 통째 사라진 곳도 있었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과 농기계들이 전소됐고 일부 문화유산과 계명산자연휴양림도 전소됐다.

 

영주로 몸을 피했다가 다음 날 마을로 돌아와서 보니 다행히 집은 화마를 피했다. 그러나 안도의 숨도 잠시 이웃과 친구, 가족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두 분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듣고만 있어도 그날의 공포와 황망함 그리고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들이 잿더미처럼 가슴속에 쌓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회복할 기력조차 사그라들까 봐 염려스러웠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조심스럽게 건넨 한마디에 두 분은 이렇게 말했다. 그날을 이야기할 수 있게 들어준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혼자가 아니라는 게 느껴져 잠시나마 슬픔을 묻고 조금은 평범한 일상처럼 느껴지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정재종택 김영한 종부님과 수애당 안주인 문정현님

 

슬프지만, 그럼에도 일어나야 하는 이유

두 고택은 농촌 관광숙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곳이다. 화재 이후 예약을 취소하기보다 일정을 미뤄준 손님도 있었고, 조용히 찾아와 묵으며 마음을 전한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수애당 안주인은 말했다.

"우리가 하던 일을 예전처럼 평범하게 다시 할 수만 있다면, 그 힘으로 이웃을 돌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번 산불을 겪으면서 그동안 찾아주신 손님들이 결국은 내 이웃이고, 가족이었구나 그래서 내 주변을 돌볼 수 있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해요. 이 마을에선 저희 부부가 제일 젊고 대부분 70세 이상인 분들이세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니 그분들이 지켜온 무형유산과 문화유산 그리고 안동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잘 전하고 싶어졌어요. 자연의 소중함도 꼭 전하고 싶고요.”


임동면 수곡리에 위치한 수애당


불은 지나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겨진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해주는 관심' 그리고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의 동행'이다.

산촌, 어촌, 농촌은 1차 산업과 소규모 관광에 의존하는 지역이 많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 소멸로 정보력과 대응력이 매우 취약해 이런 재난이 곧 재기 불능으로 이어진다. 이대로 두면 고향도, 문화유산도, 우리를 만든 이야기도 형체 없이 사라지고 기록으로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대대로 이어온 문화유산이 비록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조금은 특별하고 아름답게 소멸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재종택 김영한 종부님은 전통주인 '송화주'의 기능보유자이자, 500년 전 고조리서인 『수운잡방』을 저술한 광산 김씨 가문의 후손

 


안동에서의 추억과 기부의 특별함을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해 수애당, 정재종택의 숙박권과 기부를 할 수 있는 ‘온정 숙박 상품권' 마련을 도와드렸다. 사실 이 상품은 내가 먼저 구입하려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두 분이 우리도 도와주신 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피해 입은 이웃들을 적극 돕고 싶다고 하셔서 만들어졌다. 숙박도 연대도 일상 회복도 그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예약 링크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수애당과 정재종택의 온정 숙박 상품권]
화재로부터 살아남은 마을에 당신의 따뜻한 방문과 응원을 전해주세요. 이 상품권은 단순한 숙박 할인권이 아닙니다. 수애당과 정재종택 두 고택이 지역을 돕고 일상을 회복하고자 개인적으로 마련한 작은 연대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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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기간: 구입일로부터 (성수기 포함)
•구성: 30만 원권 / 50만 원권 중 선택
•혜택: 주중 숙박 요금 20% 할인 + 상품권 금액의 20%는 산불 피해 회복을 위한 기부금으로 적립 (임동면의 박곡리, 고천, 지동 등 인근 피해주민을 위해 사용될 예정입니다.)

•예약 문의: https://naver.me/xjeLXIAw

 

수애당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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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당 안주인 문정현님 010-4280-6661 (상품권신청 및 예약은 수애당 네이버 예약 링크와 전화 신청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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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상품권은 지역의 고택이 기존에 운영해오던 숙박 상품의 정상 재개와 피해 지역 회복을 위한 것이며, 별도의 수익 목적이나 외부 수주를 위한 콘텐츠가 아닙니다.
•숙박상품권의 20%는 안동 산불 피해 지역을 돕는 기부금으로 임동면의 화재 피해 주민 대상 정서 회복 지원에 사용됩니다. 향후 수애당(https://www.instagram.com/suaedang)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용처와 내역을 알려드립니다.
•모든 인터뷰 내용은 당사자의 구술을 바탕으로, 사전 동의 하에 재구성되었습니다.


•이번 산불로 안동 외에도 의성, 영양, 청송, 영덕 등 여러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글은 안동 임동면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지만 그 외 지역 역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피해 지역의 특산품을 구입하거나 지역 농산물·소상공인 매장을 찾는 것만으로도 현장에선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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