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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차 만발한 하동으로의 여행" _ 안은금주의 컬리너리 투어
    Media/레몬트리 컬리너리 투어 2016. 5. 3. 18:14

     야생차 만발한 하동으로의 여행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가 다가올 즈음이면 하동에서는 첫물 녹차 수확이 시작된다. 갓 싹을 틔운 여린 찻잎은 그냥 먹어도 떫은맛 없이 그윽하고 신선한 향을 낸다. 첫물 녹차 수확이 한창인 경남 하동으로 떠난 茶.香.紀.行.

     

     

     

     

     

     

      

     

    지리산 기슭 따라 둘레둘레 야생차가 자라는 동네

    보성과 함께 우리나라의 최대 차 생산지로 꼽히는 하동은 야생에서 자란 차를 덖어 만든 수체 차의 산지다. 보성의 차밭이 예쁘게 가꾼 '재배차'를 기른다면, 하동은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 형성된 밭에서 자라는 '야생차'를 재배한다.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씨앗이 굴러 자리 잡은 곳에서 차가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야생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다른 점. 후에 재배하기 좋도록 골을 내고 모양을 잡아 다듬긴 했어도 이미 있는 나무를 손질한 수준이라 골이 삐뚤빼뚤 제멋대로인 곳이 많다. 수확한 야생차는 오랜 세월 걸쳐 전해 내려온 덖은 기술을 통해 고급 녹차로 태어나는데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 고급으로 치는 녹차의 대부분이 바로 이곳 하동에서 생산된다.

     

    첫물 녹차 수확에 나서다

    첫물 녹차는 찻잎이 돋아 처음 따기 시작한 후 딱 10일 정도까지만 수확할 수 있는 차의 '햇싹'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싹은 맛있는 성분을 잔뜩 응축하고 있다가 곡우가 되기 20일 전쯤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본래 차는 햇볕을 받을수록 탄닌 성분이 늘어나 떫은맛이 늘어나고, 반대로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은 줄어들어 맛이 떨어진다. 때문에 여린 잎일수록 맛있는 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래서 요맘때 따는 첫물 녹차가 가장 맛이 좋다. 싹이 날 때 뾰족하게 말려 있는 새순은 창을 닮았다 하여 '창', 좀 더 자라 잎이 다 펴지지 않고 약간 오그라들어 있는 것은 깃발을 닮았다고 해 '기'라 부른다. 창 모양 잎이 하나, 깃발 모양 잎이 하나인 1창 1기 차가 '우전'으로 이 우전 차는 첫물 녹차 중에서도 귀한 차로 꼽힌다. 수확한 햇차를 구경하다 우전을 날름 입에 넣어 보았더니 이게 웬일, 쓴맛 하나 없이 야들야들 신선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천년 차나무가 있는 도심다원

    하동 일대에는 많은 다원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여덟 곳을 일컬어 '다원 8경'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차 씨를 가져와 심었다는 쌍계사 인근 차 시배지부터 벚꽃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십리벚꽃길에 위치한 '쌍계야생다원','매암다원' 등 고즈넉한 풍광과 어우러진 다원의 모습은 보는 눈이 다 호사스러울 정도다. 그중에서도 '도심다원'은 1천 년 된 차나무가 있는,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경상남도 지정 기념물로 지정된 천년 차나무는 높이 4.2m, 밑동 둘레 57c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차나무다. 도심다원은 산을 에둘러 펼쳐진 차밭으로, 그야말로 야생차밭의 진수를 보여준다. 너른 평지에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 차밭만 보았지, 야생차 나무는 처음 보는 터라 밭 구경을 하면서 처음에는 그게 차나무인지도 몰랐는데 농부에 따르면, 기르기 편하려고 나무를 깎아 다듬은 것이지 본래 차나무는 사람 키를 훌쩍 넘길 만큼 높이 자란다고 한다.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슬로시티 하동에 있는 것 vs 없는 것

    '차 한 잔의 여유'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동네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곳이다. 슬로시티가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생태계와 전통 산업이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하고, 24시간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 '유기농법에 의한 지역 특산물'이 있어야 한다. 하동은 야생차 덕에 슬로시티로 지정될 수 있었는데, 찻잎을 따서 정성껏 덖어야 하는 녹차야말로 슬로푸드 중의 슬로푸드라 할 수 있겠다. 여기 더해서 하동에는 꼭 가보아야 할 요릿집이 한 군데 있다. 바로 녹차 요리 전문점 '찻잎마술'이 그곳이다. 찻잎마술에는 녹차로 만든 효소와 녹차 잼. 녹찻잎 마간장 등 그야말로 녹차로 만든 온갖 종류의 요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찻잎마술에서 만드는 마술 같은 녹차 요리

    찻잎 마술에서는 이름처럼 잎으로 마술을 부린 요리를 선보인다. 요릿집 주인 정소암 씨는 차를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다양한 식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자니 만드는 데 드는 공력이 보통이 아니다. 요리에 곁들은 녹차씨 오일은 300kg의 씨앗을 착즙해 고작 5kg의 오일을 얻는다. 이를 얻으려면 으깨서 빻고 발효시킨 후 착즙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찻잎 효소는 그보다 더 많은 품이 든다. 열흘을 꼬박 30°C의 온도로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만드는 동안 눈을 뗄 수 없고, 특히 장아찌나 피클은 절이는 동안 물을 계속 갈아주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해 대량으로 만들 수도 없다고. 이곳에서 만든 양념장과 음식은 알음알음으로 판매하고 있기도 한데, 녹차 효소는 물에 희석해 그냥 마셔도 좋고, 모든 요리에 베이스처럼 쓰면 요리에 감칠맛을 더해준다. 가을에 핀 녹차꽃에서 꿀을 추출해 만든 녹차 꿀은 사포닌이 인삼만큼 풍부해 건강에도 그만이다.

     

    공력을 들인 만큼 맛이 깊어진다

    보통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첫물 녹차 수확은 길어야 5월 말까지 한 달 정도 이루어진다. 일일이 손으로 따기 때문에 분주히 수확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루를 꼬박 들여 따도 수확량은 고작 400g 남짓밖에 되지 않든다고 한다. 그나마도 수분을 말려 차로 만들면 그중에 20%만 남는다. 한 바구니 가득 따도 100g 차 한 통 만들기가 어려운 셈이다. 이를 덖을 때 또한 잎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일일이 덖어야 하니 잎을 하나하나 따 차로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이 참으로 길고 고단하다. 대개 녹색이 많이 우러나는 차를 좋은 차인 줄 알지만, 사실 진한 녹색이 나는 차는 차를 덖지 않고 증기로 찌거나 덖은 후 비비는 과정에서 잎에 상처가 필요 이상으로 생겨 색이 우러나는 것이다. 수제 차는 맑은 연둣빛이 나는데, 이렇게 뿌옇지 않게 맑은 탕(현지에서 차를 우린 물을 탕이라 표현한다)을 내는 게 기술이라고 한다. 잘 덖은 차는 쓴맛이 전혀 없고 속을 해치지 않아 공복에 마시거나 여러 잔을 마셔도 속에 부담이 없다. "하동 차는 기계로 일정하게 심은 게 아니라 차 씨가 굴러 중구난방 피고 진 것이라 자연 블렌딩이 되어 있지요. 그래서 맛은 세계최고로 치지만, 늘 같은 맛이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품으로 만들기 어려워요. 하동 수제차는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재배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하우가 담긴 예술 작품이라 여겨야 합니다."

     

    야생 수제 차, 제대로 마시는 방법

    이렇게 어렵사리 만든 차를 제대로 마시지 못하면 말짱 헛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차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엔 잘못된 상식이 많단다. 도심다원 오시영 씨에 따르면 제대로 덖은 우리 차는 5~10초 정도면 금세 차가 우러난단다. 대부분 녹차는 2~3분 우려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라고. 또한 보통은 차를 두세 번 우리면 맛이 없어진다 생각하지만, 잘 만든 수제 차는 5번 이상 우려도 계속 차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티백으로 만든 차는 2~3번 우리고 나면 물 맛밖에 안 나지만, 수제 차는 끝까지 차 맛을 즐길 수 있고, 7~8번 우렸을 때 뒷맛이 달콤해진다는 것. 첫 잔은 5~10초 우리고 이후부터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우리는 것인데, 잘못된 다도법이 구전되어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실제 차를 덖는 것을 눈으로 보고 맛으로 느끼고 나니, 이토록 공들여 만든 우리 차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공정무역 원두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정성 들여 재배한 우리 차의 가치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니 말이다.

     

     

    # 7대째 차 농사를 짓고 있는 도심다원의 오시영 대표와 대를 잇고 있는 아들 오재홍씨. 재홍 씨는 제다(찻잎을 따 차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국내외의 차를 공부하고 소믈리에처럼 맛보는 일 까지 하며 차를 더 잘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잇었다.

     

    # 찻잎의 생장을 따라, 곡우 이전에 딴 여린 차는 '우전', 곡우에서 입하(5월5일)까지 딴 차는 '세작', 입하 이후 10일 정도 더 자란 후에 딴 차는 '중작', 5월 하순 이전까지 중작보다 더 굳은 잎을 따 만든 차를 '대작'이라 부른다.

     

    # 차나무는 1년에 0.1mm씩 자라 나이테가 없다. 대개 가지의 굵기를 보고 가늠한다.

     

    # 일종의 덩어리 차인 떡차. 찻잎을 쪄 절구에 찧으면 떡 반죽처럼 되는데 이를 모양내 말려두면 오랜 기간 먹을 수 있었다. 요즘의 떡차는 제다 시 발효과정을 거쳐 맛이 부드럽다.

     

    # 어린 잎일수록 탄닌이 적고 아미노산 성분이 많아 감칠맛이 나고 맛있다.

     

    # 하동은 습기가 많고 밤낮의 기온차가 커 차나무가 자라는데 최적의 환경을 지니고 있다.

     

    # 하동 차의 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매암차문화박물관. 우리 차를 직접 맛보고 즐기기를 원한다면 5월 2일부터 6일까지는 하동 야생차 축제에 참가해보자. 다원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찻잎을 따는 것에서부터 덖기, 비비기 등 명품 녹차를 생산해내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 문의) 055-883-3316

     

     

     

    출처 : 레몬트리 2012년 5월호


    기획 - 오영제 기자

    사진 - 이과용(RAUM Studio)

    안은금주(식생활소통연구가) - 좋은 식재료가 나는 산지를 소개하고, 농장으로의 여행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빅팜'의 대표이자 한국 컬리너리 투어리즘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레몬트리는 그녀와 함께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를 찾아 떠나는 식문화 여행, 컬리너리 투어를 선보인다.

     

     

     

     

    빅팜컴퍼니()

    www.big-farm.com /02-446-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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